2014년 7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부슬부슬 비오던 날, 분당 정자역 지하철 승강장에서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 이승호. 지금도 그때 그 만남은 우연일 수 없다고 서로 얘기한다.

밖에 나올 일이 없던 그날, 각자의 사정으로 밖에 돌아다니다 우연히 마주쳤다. 짧은 인사와 의미 심장한 말을 던지고 갔다.

“창업준비중인데 디자이너가 필요해, 혹시 너가 해볼 생각있어?”

그 당시 나에게 ‘스타트업’이라는 용어 자체가 굉장히 생소했다. 전역한지 얼마 안됐고, 학생으로 복학하기 몇 달 전인 그저 백지 상태였다. 그러나 나에게 제안한 친구는 캐나다 유학생이라 그런지(그냥 한국인이었어도 특이하긴하다) 기존에 내가 알던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말하는 방식이 좀 외국 패치된 느낌이 있었지만, 열정이라는 추상적인 용어가 사람한테서 뿜어져나오는 걸 피부로 느꼈다. 솔직히 한 시간정도 설명들은 아이디어는 이해가 안됐지만 이 친구의 열정과 창업에 대한 나의 호기심, 그리고 근자감(전역 버프)가 어우러져 24살 빠른 나이에 스타트업을 하게 되었다.

팀빌딩, 팀빌딩, 그리고 팀빌딩

unbox라는 네이밍과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디어 하나만 있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리스트업하며 차근차근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들이 필요했고 찾아다녔다. 지인들을 통해 자연스레 팀 빌딩이 이루어졌다. 기획자 둘+a, 개발자 셋, 디자이너 둘, 마케터 하나, 총 8명이 넘었다. 평균 나이 24, 각자 분야에서 전문가가 아니라 그저 열정으로 뭉친 팀원들. 지금 생각해봐도 어떻게 모인 건지도 모르겠고 신기할 따름이다.

unbox 회의 모습, 판교 테크노밸리

개인 일정을 무릅쓰고 시간 날 때마다 모여 열정을 토해냈다. 그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났고 어느샌가 일상이 되어있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생각났다. 사소한 문제 하나를 두고 여러 명의 의견이 전투적으로 오갔다. 감정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 과정을 좋게 보면 자유롭고 수평적인 의견 표출이지만, 다르게 보면 검증되지 않은 자기주장 외침에 가까웠다. 정답은 아이템을 시장에 내놓기 전까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성패를 떠나서 출시 이전에 서비스 개발, 자금 문제, 투자(정부 지원), 마케팅 비용, 인건비 등 현실적인 문제가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서비스 출시 시기가 계속 지체되면서 자연스럽게 재미 혹은 부업으로 시작한 친구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떠나간 친구들이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떠난 팀원들은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졸업과 취업 등 눈앞의 문제는 생각보다 무거운 문제들이었다. 시작한 지 반년 만에 팀이 4명으로 줄었다.

현실적으로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남은 넷, 우리의 모든 집중은 정부지원금으로 쏠렸다.

노력한 결과, 2015년 5월에 우리는 성남 산업 진흥재단에서 정부 지원금 20,000,000원을 지원받게 됐다. 그 비용은 개발 외주(iOS 개발, 서버 백 앤드 개발) 맡기며 시원하게 태워졌다. 정부지원금을 받고 새로운 지원군 ‘유서현’을 만나게 됐다. 살면서 본 사람중에 가장 독특한 캐릭터였다. 책임감있고 일처리가 굉장히 칼 같았다. 그렇게 모인 정예 멤버같은 5명은 정부 지원금을 이후로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끝까지 함께한 전우들

그렇게 우리는 일년을 더 함께 했다. 아쉽게도 야심 차게 준비한 서비스가 잘 안돼 각자의 길로 돌아섰다. 스타트업하면 ‘팀 빌딩’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연인 관계도 티격태격하는데 이익을 위한 집단이기 때문에 서로 안맞으면 더욱 쉽게 돌아서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차가운 현실 속에 뜨거운 열정하나로 2년을 함께한 팀원들에게 아직도 고마움을 느낀다.

2년 반 동안 경험한 스타트업을 돌이켜보면 정말 힘들었지만 가장 나를 성장시킨 기간이었다. 얻은건 돈도 명예도 아니다. 그저 좋은 추억과 추억을 함께한 사람,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같이 성장한 내 모습이었다.

제품 완성에 이르기까지 당연함의 연속

우리 서비스가 완성되기까지 약 2년이 걸렸고, 처참히 실패했다.

우리는 지겹도록 싸웠다. 내 작업물에 대한 비판같은 비평을 들으면 화도 났다. 내 의견이 지지 않기 위해 난 이유를 만들어내야 했다. UX 관련 서적과 미디엄, 브런치 등 전문가분들의 생각을 읽으며 간접경험을 통해 어떻게든 설득해야했다. 정말 스펀지처럼 필터링도 되지 않은 체 온갖 잡지식을 머릿속에 구겨 넣었다. 철학도 없이 난 그저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나쁘게 말하면 각자 영역 입장 표명 같은 싸움이었고, 좋게 말하면 ‘원석 다듬는 과정’이었다.
그 기나긴 과정이 지나 끝내 제품을 완성했다.
되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사업 기획과 개발적인 이슈를 제외하고, 디자인의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일까? 사용자의 눈높이인지, 팀원들의 만족도인지, 디자이너 개인의 취향인지.. 어디에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결과물은 확연히 달라진다.
우리는 마치 짬짜면 같았다. 아티스트의 공연, 전시 정보를 중개해주는 서비스로써 아티스트와 그 아티스트의 공연을 좋아할 만한 주 타깃층(20-30대 힙한 유저)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잡았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당연히 시크해야 되고, 멋있어 보여야돼!”, “이걸 만들면 예술가들이 써줄 거야!”, “공연을 좋아할 만한 사용자들은 굉장히 힙하고 디자인을 바라보는 눈이 높을 거야!” 재밌는 사실은 저런 내용 모두 우리가 세운 가설이었다. 이 가설들을 증명할 방법이 존재할진 모르겠지만, 애초부터 우린 증명할 생각도 없었다. 플로우 차트 작업 이전에 임의로 해본 퍼소나 역시나 우리생각에 심취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딱 우리편)이었다. 사용자를 위한 것 같은 데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고, 개발자에게 넘기기 전 최종 시안은 팀원들의 만족도와 디자이너의 취향에 의해서 결정됐다. 아이디어와 스토리보드, 그리고 GUI 디자인이 윤곽을 들어낼 때 우리에겐 자연스레 ‘당연한 것’이 되어있었다.

가장 달콤하면서 위험한 말 “당연하지”

한 여름에 지하철 냉방칸 온도는 누구에게는 시원하고 누구에게는 추운 온도일 수 있다. 내가 알면 남들도 알 것이라는 끝없는 자기합리화는 실패의 요인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예술작품처럼 설명을 써놓고 큐레이터가 설명해줘야 알면 잘못된 것이다. 나한테만 당연한 것은 절대 당연한 게 아니다. 익숙함에 속아 넘어가지 말자고 다짐했다.

정답은 없다. 디자인도, 사업도

디자인에 정답은 없다.
디자인에는 미술과 다르게 평론가가 없다. 트렌드를 분석하는 사람,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사람(누군가의 잔상)이 있을 수는 있지만, 1+1=2 처럼 디자인은 이래야한다고 정답을 내놓을 수 없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과거에 멋진 디자인도 지금보면 구식으로 치부되는 것을 볼 수 있다.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 안에 실용적인 컨셉을 잡고 길을 잃지 않게 계속 되새기는 것이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컨셉은 ‘콘텐츠에 방해가는 요소는 모두 없애기’ 딱 하나였다.
사업은 더더욱 정답이 없었다.
성남 산업 진흥 재단에서 정부 지원금을 받고 각종 교육을 통해 전문가 멘토링을 받을 때에도, 해커톤을 하며 평가를 받을 때에도, 교수님, 학교 선후배, 지인 등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느낀 것은 하나다. 그곳엔 정답은 없었고 정답을 거기서 찾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개인의 의견은 정말 다 다르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며, 경험한 범위와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 땐 이렇더라, 저런 경우도 있더라.. 등의 경험에 의한 멘토링이 가장 많다. 살아가면서 도움은 정말 많이 되지만, 당장 현재 우리가 하려는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했다. 좋은 멘토를 많이 받으면 사업 성공할까? 사업 계획서가 어느 정도 탄탄해질 수 있어도 어떤 때는 실제로 실행하기까지는 와 닿지 않는 이론으로 들린다. 왜 신규 창업자 약 100만 명 중 85만 명이 3년 안에 폐업할까? 그리고 성공한 스타트 업은 1%도 안된다.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어서기까지 너무 많은 요소들이 방해한다. 현 정부의 흐름, 사업 아이템, 개발 가능성, 초기 자금, 마케팅 전력, 고객 유치, 투자자와의 관계, 팀과의 관계, 개인 여건, 시대적인 유행, 현실적인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운! 이 수많은 요소, 수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하는데 이것들에 대한 정답이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겪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간접경험을 하고 상황별 대입시키려 노력할 뿐이다.
스타트업처럼 빠른 성장을 위한 회사는 방향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몸에 남긴 습관

디자인을 하다 보면 멋있고 이쁜 것을 많이 본다. 비핸스, 핀터레스트, 드리블, 어워드, 기업 디자인 사이트 들을 돌아가며 비주얼적인 아름다움은 수도 없이 많이 본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듯이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들은 참 많다. 심미적인 기준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스타트 업을 끝내기 전까지 미에 집착했다. 그러나 비즈니스와 연결해서 보면 미적인 것은 도구와 수단이지 목표가 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디자이너니까 디자인만 잘하면 되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이 경험을 기준으로 버렸다.
굿디자인이란 일종의 기준점을 봐도 심미성 외에 경제성, 합목적성, 독창성, 질서성이 있다. 여기서 내가 느낀 경제성과 합목적성은 비즈니스와 연결되어있고, 독창성은 단순히 모니터 속 그래픽이 아니라 틀을 깨는 사고방식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영역은 비즈니스와 분리할 수 없다.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는데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잘 안 했다. 분명한 이유와 목적 없는 디자인을 하는 행위는 그저 이쁜 쓰레기를 만드는 일에 불과했다. 나는 지금껏 너무 많은 쓰레기를 만들었고 이제는 쓰레기를 줄이려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전에
왜 해야 할지를 분명히

#Design#Startup
신연석

디자인, 개발, 기획,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은 디자이너입니다.
값진 경험과 그 경험에서 깨달은 것을 기록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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